민주평통 북유럽 협의회…. 자유를 지켜낸 ‘구국의 55일’ 현장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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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평통 북유럽 협의회…. 자유를 지켜낸 ‘구국의 55일’ 현장 찾아
  • 김종열 기자
  • 승인 2024.09.15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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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10,000 사상, 북한군 24,000명 사상으로 지켜낸 낙동강 방어 전투의 현장
역사의 현장인 왜관철교를 방문한 민주평통 북유럽 협회회 고창원 회장과 박소향 간사
역사의 현장인 왜관철교를 방문한 민주평통 북유럽 협회회 고창원 회장과 박소향 간사

자유·평화·번영 헌법 제92조에 근거한 평화통일정책 대통령 자문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북유럽 협의회(회장 고창원) 일행이 14일 호국의 도시 경북 칠곡군에 있는 전적기념관을 방문하고 평화통일을 기원했다.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개시되어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성립되기까지 만 3년 1개월 2일간 계속된 전쟁으로 당시 남하하는 북한군을 ‘시산혈하’의 대혈전으로 1950년 8월 1일~9월24일까지, 55일간 낙동강 방어선 전투에 승리하면서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을 전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구국의 55일을 통해 오늘의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낸 최후의 전선으로 기록되고 있는 곳이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북유럽 고창원 회장과 박소향 간사는 지난 3일간 독일통일을 현장에서 경험한 한인 1.5세의 한국통일 희망 이야기 강연을 함께 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북유럽 고창원 회장과 박소향 간사는 지난 3일간 독일통일을 현장에서 경험한 한인 1.5세의 한국통일 희망 이야기 강연을 함께 했다.
  • 파독 광부. 간호사에서 분단된 조국의 평화통일 전도사로

파독 광부. 간호사로 조국을 떠났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북유럽 고창원 회장과 박소향 간사는 지난 3일간 독일통일을 현장에서 경험한 한인 1.5세의 한국통일 희망 이야기를 설파하기 위해 귀국했다. 그들이 ‘꼭 한번 가고 싶다’라는 호국의 도시는 전쟁의 아픔에서 자유를 지켜내며 세계평화의 선도하는 칠곡군이다.

왜관철교
왜관철교
  • 낡은 교각 위, 과거로 돌아간 역사의 현장에 선 통일전도사

그들의 첫눈에 보인 왜관철교는 한국전쟁 때 남하하는 북한군을 저지하려고 미군 제1기병사단에 의해 경간 1개가 폭파하면서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의 전략적 진입을 막아내며 북진의 발판 역할을 한 유적이며 한강교 폭파에 버금가는 작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참 보수공사 중인 왜관철교는 일제가 1905년 군용 단선 철도로 개통한 경부선 철도 교로 1941년 11월 30일 이곳에서 북쪽으로 100미터 지점에 510미터 복선 철교가 가설되면서 이 다리는 경부선 국도로 사용되었다.

칠곡호국평화기념관 앞에서
칠곡호국평화기념관 앞에서
  • 유학산, 수암산, 가산산성, 가산 팔공산 전투 한자리에. 칠곡 호국 평화기념관

다음 방문지는 2015년 548억 원을 투입해 준공된 것으로 대한민국을 지켜낸 낙동강 방어선의 최대 격전지인 칠곡에 있는 기념관, 단일 전쟁기념관으로 국내 최대 규모인 칠곡 호국 평화기념관을 찾았다.

칠곡호국평화전시관을 투어하는 북유럽협의회
칠곡호국평화전시관을 투어하는 북유럽협의회

칠곡 호국 평화기념관에는 낙동강 방어선전투 (유학산 전투, 수암산 전투, 가산산성 전투, 가산. 팔공산 전투)를 한자리에 전시하면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호국을 배우고 세계평화를 눈으로 익히며 체험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칠곡호국평화전시관 왜관철교 파괴 모형
칠곡호국평화전시관 왜관철교 파괴 모형

전시장 내에는 당시 지역 전선에서 발굴된 유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유학산 전투의 절반은 노무자들이 수행한 것이다.”라는 유엔군 지휘관의 말처럼 총 대신 지게를 지고 포화 속으로 뛰어든 인근 마을 주민들의 생생한 재현과 라이터, 치약, 칫솔, 식반, 버클 등 당시 생필품도 가는 이의 발길을 돌려세웠다.

칠곡호국평화전시관
칠곡호국평화전시관
  •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북진을 향한 그 방어선 찾아

“유학산을 탈환하지 못하면 국군 제1사단은 동서로 분단되고, 대구의 관문인 왜관~다부동 방어선이 무너진다.”, “국군 제1사단 제12연대는 굶주림과 탄약 부족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에도 끊임없이 공세를 전개하여 수암산(519고지) 탈환을 시도했다.”, “국군 제8사단은 아군 후방지역 교란을 시도하는 북한군을 가산산성에서 포위하여 완전히 섬멸하였다.”, “국군 1사단은 대구점령을 목표로 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고 재기불능의 상태로 만들었다.”

다부동전적기념관
다부동전적기념관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전투가 없었지만, 다부동 전투로 불리는 유학산(839고지) 전투는 대구 방어의 관문이자 전투의 승패를 결정짓는 전술적 요충지였다. 그러나 8월 13일 국군 제1사단 제12연대의 병력이 배치되기도 전에 북한군이 839고지를 먼저 점령하면서 제12연대는 험준한 암벽을 맨손으로 기어오르며 9회에 걸친 백병전과 1,000여 명의 병력손실 끝에 8월 23일 837고지를 탈환하였고, 뒤이어 839고지도 탈환하며 방어진지를 구축해 대구를 지킬 수 있었다.

다부동전적기념관
다부동전적기념관

마지막 방문지는 그 유명한 다부동전적기념관이다. 다부동은 조선시대 출장 관원들이 쓰던 숙박시설이 있던 곳으로 6·25전쟁을 기념하기 위해 1981년 11월 30일 준공하였으며, 다부리 일대에 설정된 주 저항선에서 대구를 목표로 공격해 오는 북한군을 격멸함으로써 이른바 생사기로에 직면한 전황을 극복했던 곳이다. 이러한 호국의 고장에 6·25 전적지 중 다부동 전적기념관을 건립 운영함으로써 구국 영령을 추모하고 국민 안보 의식을 고취하여 전후 세대에게 전쟁의 산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다부동전적기념관
다부동전적기념관

고창원 회장, 박소향 간사 일행은 “처음 찾은 곳에 6·25전쟁의 상혼이 아직도 남아있는 듯하다. 오늘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희생된 모든 분의 영전에 다시 한번 고개가 절로 숙인다”라면서 “세계 곳곳에 퍼져있는 우리 국민에게 전쟁 없는 평화통일을 위한 교훈을 알리는 데 앞장서 나가겠다.”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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